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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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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삼한(三韓)의 원수를 갚았노라. 아무 할 말은 없다. 죽음의 이 순간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각오하고 있었 다. 다만 조국 광복을 못 본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 세상에 가서도 독립항쟁은 계속하리라. - 조명하 의사의 유언
일본군은 3만여 명의 병력으로 태항산을 완전히 포위해 전차와 폭격기를 동원해 폭격을 가했다. 윤세주 열사는 조선의용대에게 탈출로를 확보하고 비무장대원이 탈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고 명령했다. 수많은 대원이 희생 된 가운데 5시간 만에 탈출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
나는 주의자도 사상가도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를 강탈하고 우리 민족을 압박하는 놈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하 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총독을 못 죽인 것이 저승에 가서도 한이 되겠다. - 송학선 선생의 법정 진술 중
“나의 구국 일념은 첫째, 강도 일제로부터 주권과 독립을 쟁취함이요. 둘째는 전 세계 독재자를 타도하여 자유 와 평화 위에 세계 일가의 인류공존을 이룩함이니 왜적 거두의 몰살은 나에게 맡겨 주시오.” - 백정기 의사가 중국 침략 주범 중 하나인 주중 일본공사 처형에 나서기 전에 한 말
“오인(吾人)은 대한독립광복(大韓獨立光復)을 위하여 오인의 생명을 희생에 공(供)함은 물론, 오인이 일생의 목 적을 달성치 못할 시는 자자(子子) 손손(孫孫)이 계승하여 수적(讐敵) 일본을 완전 구축하고 국권을 회복할 때 까지 절대 불변하고 결심 육력(戮力)할 것을 천지신명에게 서고(誓告)함” - 1915년 선생이 주도한 대한광복회의 결의문에서
1909년 12월 22일 명동성당 앞에서 매국노 이완용이 칼에 찔려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은 같은 해 10월 26일 결행된 안중근 의거와 짝을 이루는 거사였다. 안중근의 의거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을사늑약의 일본 측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일이라면 이 일은 한국 측 원흉인 이완용의 처단 시도 였기 때문이다.
1932년 1월 8일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궁성으로 돌아가던 일왕에게 수류탄이 날아든다. 궁내 대신의 마차가 뒤집혔고 일본은 큰 충격에 휩싸인다. 그 수류탄을 던진 이 가 이봉창 의사다.
동양척식회사는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고 경제적 수탈을 자행하는 일제의 기관이다. 1926년 12월 28일 이곳 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던 청년은 이렇게 외쳤다.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 2천 만 동포들아 분투하라, 쉬지 마라.”
일본 왕궁에 폭탄을 던진 김지섭 의사를 보기 위해 재판장은 초만원이었다. 의사는 재판장에서 총독정치의 악랄성과 비인간성을 폭로하고 동양척식의 착취와 동포생활의 빈곤을 들어 일제의 학정을 비판했다. 한국 사람은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독립선언서에서도 명시한 바와 같이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 항쟁할 것이라며 1시 간 20분 동안이나 열변을 토했다.
1921년 9월 12일 오전 10시 20분경 전기시설 수리를 한다며 조선총독부 청사에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2 층에 올라가 폭탄을 던졌고 폭탄은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몰려온 헌병들에게 “2층으로 올라가면 위험하다”라 는 말을 남기고 걸어 나왔다. 그가 바로 김익상 의사다.
1923년 1월 12일 오후 8시경, 서울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종로경찰서 서편 유리창으로 폭탄이 날아들어 폭발 했다. 종로경찰서는 일제 식민통치의 골간을 이루었던 경찰력의 대표적인 본산이자 수많은 독립항쟁가를 탄압 했던 곳이다.
일제는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왕 생일연과 상하이 전승 기념행사를 열었다. 11시에 일본군 총사령관이 등장했고 상하이에 있는 외교관과 내빈이 자리를 잡았다. 행사가 끝나자 외교관과 내빈은 돌아갔고 일본인만 남아 일본 상하이 교민회의 축하연이 벌어졌다. 일본 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단상에 물통 하나가 날아들었 고 그 물통은 곧 폭발했다.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는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자고 외치며 일본 헌병대에게 잡혀갔다.
만주 하얼빈 역에 특별 열차가 도착했다.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의 재무대신 코코프초프와 회담을 하기 위한 열차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역 구내에 도열한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고 열차로 돌아가던 중 안중근 의사가 쏜 3발의 총탄을 맞고 절명했다. 대한제국에 을사늑약을 강제하고 헤이그에 특사를 보냈다는 이유로 광무 황제를 강제 퇴임시켰기에 안중근 의사가 그를 쏜 것이다.
1919년 9월 2일 남대문역 앞에서 천지를 진동시키는 큰 폭음이 울렸다. 그해 조선 총독부 총독으로 부임해 온 사이토 마코토가 탄 마차를 향해 날아간 폭탄은 미처 마차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몇 미터 앞에서 터졌다. 그 폭 탄을 던진 이는 환갑이 넘은 강우규 선생이었다. 노령의 나이에 실행한 강우규 선생의 의거는 전국에서 수많은 비밀결사가 조직되는 자극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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